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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연결하다/컬쳐&트렌드

[소통단] 문종석 매니저의 <다시>

 

문종석 매니저의 <다시>

 

 

2013년 겨울

 

12월 한 달은 여느 달보다 유난히도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올해의 마지막이라는 느낌 때문인지 몰라도 어느덧 시간은 흘러서 2013년도 과거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맘때 쯤이면 각 신문사 등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발표하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올해의 히트상품’ 선정입니다.

 

만약 저에게도 올해의 히트상품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저는 몇 개의 TV 프로그램을 꼽고 싶습니다. ‘응답하라 1994’, ‘진짜 사나이’, ‘꽃보다 할배’, ‘아빠 어디가’ 등이 그것입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현재도 방영되고 있고, (‘꽃보다 할배’는 현재 여배우 버전 격인 ‘꽃보다 누나’가 방영 중입니다.)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수많은 스타가 탄생했을 만큼 엄청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이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1994년의 학창 시절, 2004년의 군대 시절 등 여러 가지 추억들을 떠올리곤 하는데요, 즐거웠던 추억들로는 웃음 짓기도 하고,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로는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1994년’ 그리고 1994년

 

요즘 가장 HOT한 주제는 누가 뭐라 해도 ‘응답하라 1994’가 아닐 수 없는데요, 1994년 신촌의 한 하숙집을 배경으로 대학생들의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줄거리 그 자체뿐만 아니라, 드라마 같지 않은 사실적인 그 당시의 소품들과 유행했던 가요들을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그 시대의 추억들을 공유하고 그리워하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4년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열광했었고, 교실 이데아의 가사를 거꾸로 들으면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피가 모자라’ 소동에 마치 내 일처럼 서태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강변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열혈팬’이었습니다.

 

그리고 서태지의 음악과 팝송이 수준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해 그것만 들으면서 어설프게 ‘어른’ 흉내를 내고, 반항이 멋있게만 보이는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던 철없던 ‘중딩’이었습니다.

 

그때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는 유난히 더웠던 여름방학 보충수업과 지금도 여러 가지 일들로 어수선하기만 한 북한의 ‘김일성 사망’, 그리고 드라마 ‘모래시계’였습니다.

 

1994년 겨울부터 1995년 봄까지 지금의 ‘응답하라 1994’처럼 엄청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TV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모래시계’입니다.

 

모래시계를 방영하던 날에는 도로에 차가 없고, 도로가 한산할 정도여서 ‘귀가시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었는데요, 당시 저도 모래시계를 빠짐없이 칭겨보면서 제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 ‘정동진역’이었습니다.

 

<스산한 간이역과 소나무 한 그루, 검푸른 동해바다의 포말>은 그 당시 한창 사춘기였던 감수성 충만한 중3 남학생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고, 급기야 혼자서 기차를 타고 가서 해맞이를 해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게 이르렀습니다.

 

지금에야 정동진 여행이 관광상품이 되고, 관광 열차만 타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제가 살던 인천에서 청량리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강릉역에 내려 또 한 번 간선 열차로 바꿔 타야 했답니다. 

 

그렇게 10시간 가까이 걸리는 정동진 여행은 그야말로 ‘대장정’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포기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정동진은 항상 제 마음속에서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되었고, 정동진 해맞이는 ‘버킷 리스트’에 올라가 있습니다.

 

때마침 저는 요즘 ‘아주 다이렉트하게 새해를 맞자’라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 캠페인의 컨셉이 바로 ‘해맞이 여행’이랍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꼭 해 보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의 해묵은 아이템이니 이번에 회사 캠페인도 진행하면서 개인적인 소원도 풀 것 같습니다.

 

 

‘진짜 사나이’ 그리고 2004년

 

남자 셋, 아니 둘만 모여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대화 소재가 있습니다. 바로 군대 이야기입니다.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은 바로 그 군대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사지(?) 멀쩡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국가에서 친절하게 다양한 추억들을 만들어주는 20대 초반의 잊지 못할 경험, 군대!

 

더군다나 출연진의 대부분이 ‘군필자’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남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재입대’의 악몽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사지 멀쩡한(!) 대한민국 국적의 남자이기에 군대는 피할 수 없는 숙제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국가시험 준비 등으로 인해 차일피일 입대를 미루고 있었던 저는 2003년 여름,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대학교 졸업생이면 공군 학사장교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장교라면 왠지 ‘멋져 보여’ 사관  후보생 시험을 보고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 10월 입대하여 그 ‘멋져 보임’에 화답을 받아 약 4개월 가까이 잊지 못할 훈련을 받았고, 2004년 2월 공군 소위로 임관하여 그로부터 36개월간 군생활을 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군생활을 했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이 육군 사병으로 군생활을 하기 때문에 남자들 사이의 군대 이야기에서 약간은 소외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해병대원들의 군대에서의 경험이 평생을 가듯이 저 또한 여느 남자들과는 다른 그때의 경험들과 그때 만났던 사람들은 무척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꽃보다 할배’, ‘아빠 어디가’ 그리고 2014년

 

꽃보다 할배는 컨셉이 정말 신선하고 독특했습니다. 연예계에서는 연륜 있는 ‘대선배님’들이지만 현실은 60~70대 할아버지인 네 명의 노배우. 그 할아버지들이 해외여행을 간다?


이 독특한 소재에 사람들은 호기심을 느꼈고, 네 할아버지의 유감 없는 예능감(?)이 발휘되면서 1탄 유럽여행, 2탄 대만여행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으며, 이어서 제3탄이 기획되어 내년에 방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여배우 버전인 ‘꽃보다 누나’가 방영되고 있는데요, 이 프로그램 또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아빠 어디가 또한 연예인 아빠들과 연예인 아빠를 둔 아이들의 여행 이야기를 컨셉으로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놀아주는 요즘 아빠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고 재미있는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꽃보다 할배’나 ‘아빠 어디가’는 노년층이나 장년층을 겨냥한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20~30대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의 아버지, 할아버지 혹은 내가 경험했거나 경험해 봄 직한 여행에서의 체험들을 구성한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그 두 프로그램은 머지않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특히 2014년에 저는 결혼을 앞두고 있고, 곧 아이도 생길 것입니다. 저도 이 두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렸을 적 저수지에서 그물로 송사리 잡으며 놀던 기억이 떠오르고, 미래의 제 모습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올여름 대만 여행을 갔을 때의 기억도 떠오르고 아직 못 가본 유럽에 대한 꿈도 꿔 봅니다.

 

이처럼 미래에 경험해볼 것 같은 개연성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생겨나는 정서적 유대감과 마치 내 주변의 이웃을 지켜보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더해져 더욱 프로그램에 몰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위에서 한 이야기들은 아주 작은 예이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몇 가지 잊지 못할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자 바래지기도 하고, 윤색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나쁜 기억들은 ‘필터링(Filtering)’이 되고 ‘블러(Blur)’가 되면서 좋은 기억들만 남아 <그리움>이 되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계속 머물러 있습니다.

 

이렇게 요즘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응답하라 1994’, ‘진짜 사나이’ 등에서의 기본적인 정서는 <그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경제나 생활에 있어 예전만 못하다고 느껴질 때, 과거가 더 좋았다고 느껴지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과거지향적’인 생각이 발전적이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소심한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항상 진취적이고 혁신적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움과 미래라는 단어는 마치 반의어 같습니다.

 

하지만 그 <그리움>들은 일상에서 지칠 때 가끔씩 가슴 속에서 꺼내어 미소 짓게 하고 다시 일상에서 힘을 내게 할 수 있는 작은 동기부여를 해주기도 합니다. 그리움과 미래가 서로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TV를 틀면 쏟아지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의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를 피해 위의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일견 이해가 갑니다. 현재는 너무나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구상 시인이 말하듯 우리가 바꾸고자 한다면 지금 ‘앉아있는 자리가 꽃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 사이사이의 관계에서 그리움이 생기듯 사람들 사이에서 직접 부딪혀서 싸우고 살아가는 중에 그리움이 희망으로 변해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그 자리가 지금은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굴레를 벗어났을 때 비로소 삶이 보람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요즘같이 힘든 시절,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이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이 가정이 됐든, 어렸을 때부터 함께 커왔던 친구들이 됐든, 하루 종일 얼굴 맞대고 있는 회사 동료가 됐든 하루에 잠시만이라도 편히 쉴 사람 냄새 진하게 나는 안식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위해 역시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한 번만 더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같이 사니까 사람입니다. 같이 숨 쉬고 같이 느끼기 때문에 사람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배신을 주기도 합니다.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그 슬픔을 이겨내면 그리움이 됩니다. 그렇게 사람만이 나의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그동안 바쁘게 지내다 소원해졌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한 통씩 해야겠습니다. ‘웬일이냐’고 물어오면 ‘네가 그리워서’라고 닭살 멘트 한 번 날려야겠습니다. 역시나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다시

 

- 박노해 –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