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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연결하다/컬쳐&트렌드

[천재의 식탁] 세기의 작곡가 로시니를 울린 문제의 버섯

  세기의 작곡가 로시니를 울린 문제의 버섯

 

오늘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그런지 자꾸 웅크리게 되네요.. 웅크린 몸을 경쾌한 스타카토로 시작하는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통해서 잠시나마 활짝 펴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은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한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와 문제의 버섯인 송로버섯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 


세비야의 이발사'는 씩씩하고 세기의 긍정맨으로 불린 로시니가 작곡한 곡입니다. 20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웃음을 자아내며 로맨틱 코미디의 정수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 오페라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작품답게 사랑스럽고 발랄한 선율 가득한 <세비야의 이발사>에는 작곡가 로시니의 낙천적인 성격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습니다. 통통한 몸집에 넉넉한 웃음을 소유한 세기의 긍정맨을 울게 만든 문제의 음식이 있었습니다.



  송로버섯, 천하의 긍정맨 로시니를 울리다

 

낭만파 시대 대표 작곡가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를 이야기할 때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송로버섯'(트뤼프, truffle). 그리고 이것이 바로 천하의 긍정맨 로시니를 울린 주인공입니다. 


송로버섯은 푸아그라(거위 간), 캐비어(철갑상어 알)와 함께 세대 3대 진미로 손꼽히는 식재료, 유황 같은 독특한 냄새 때문에 한때 '악마의 음식'으로 불렸고, '검은 다이아몬드'는 어마어마한 가격 덕에 붙은 애칭입니다. 하지만 한 번 맛본 이라면 풍미 작렬, 그 엄청난 가격 따윈 개의치 않게 된다고 하네요. 특히 인공재배가 불가능하고 생장 과정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데다 훈련된 돼지나 개를 이용해 땅속에 묻혀있는 버섯을 냄새로 찾아내는 독특한 채취 방법은 이 음식에 신비감마저 들게 합니다.


로시니는 이 송로버섯에 기꺼이 눈물을 보였습니다. 평소 로시니는 아주 낙천적인 성격으로 알려졌습니다. "내가 알기엔 베토벤은 평생 두세 번 즐거웠을까 말까다. 그 숫자는 로시니가 평생 우울했을까 말까 한 숫자와 같다"는 한 전기작가의 회고에서 보듯 그는 타고난 긍정맨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일생 딱 세 번 운 적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한 번은 최초로 만든 오페라가 공연에 실패했을 때, 또 한 번은 어린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그리고 마지막이 파리 센강에서 보트를 타다 송로버섯을 곁들인 칠면조 요리를 강물에 빠뜨렸을 때였습니다. 송로버섯에 직접 '버섯계에 모차르트'란 별명까지 붙이면 진한 애정을 과시하던 로시니로선 맛도 보지 못하고 놓쳐버린 송로버섯에 마음이 찢어지는 건 당연했을 것입니다.



  천재성을 꽃피운 남다른 식도락

 

로시니의 송로버섯 일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송로버섯을 두고 이탈리아 왕자와 내기를 했는가 하면, 작곡가로서 절정을 달리던 시기 돌연 은퇴를 선언했을 때에도 송로버섯이 주범으로 지목됐습니다. <세비야의 이발사>, <오셀로>, <빌헬름 텔>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성공을 거두던 로시니는 37세에 돌연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아 은퇴설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나돌았습니다. 평소 자기 노래를 제대로 부르는 가수를 찾는데 애를 먹고, 어린 나이에 작곡을 시작해 신경계통에 무리가 왔으며, 1830년 7월 혁명 후 허무주의로 돌아서며 절필했다는 추측이 잇따랐지만, 직접 송로버섯을 찾을 암퇘지를 사육하기 위해 오페라를 버렸다는 설이 제기되는 순간, 대중들은 평소 과했던 그의 식도락을 비난하며 기정사실화해버렸다.

로시니의 미식 일화들은 전설로 남았는데, 그는 음식을 지기는 것을 넘어 전문적인 지식과 연구를 통해 스스로 요리하고 새로운 메뉴 개발에 많은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현재까지 지속되는 그의 이름을 딴 메뉴만도 7개, 오늘날 프랑스 요리의 '알라 로시니' 메뉴는 모두 송로버섯을 곁들인 '투르네도 로시니 스테이크'는 로시니 메뉴의 백미,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런 요리로 손꼽힙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로시니의 이름을 딴 요리 대회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인생과 성격이 일치했던 로시니

 

세비야에서 이발사로 일하는 피가로, 음악수업을 받는 로지나의 모습


하지만 로시니의 본업은 작곡가, 이런 불세출의 미식 명성은 오히려 독이었습니다.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음악 신동이었지만 오늘날 오페라의 대가로 추앙 받는 건 푸치니나 베르디가 아닌가, 로시니는 트럼펫 주자인 아버지와 소프라노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이렇다 할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어깨 너머로 작곡 공부를 마치고, 12세에 클래식 음악 중 가장 어려운 장르인 현악 4중주를 작곡했습니다. <탄크레디>는 레스토랑에서 리조또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20여 분만에, 명작<세비야의 이발사>, 트럼펫 소리와 함께 기병대의 씩씩한 행진이 그려지는 서곡<빌헬름 텔>을 듣노라면 로시니 특유의 재치와 해학, 낙천성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타고난 익살과 재치, 그리고 누구도 갖지 못한 세계의 미식은 어쩌면 절묘한 조합이었습니다. 사람의 감각 중 가장 예민한 것이 미각이라고 했으니, 특별한 교육 없이도 최고의 오페라, 그것도 동서고금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최고의 오페라 부파(Opera Buffa)를 남긴 그의 재능에 그 풍성한 미각은 달콤한 소스가 된 것입니다.


"먹고 사랑하고 노래하고 소화시켜라. 실상 이 네 가지 요소는 샴페인을 따면 거품이 흘러 넘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마치 '인생이라는 가벼운 내용의 희극적 오페라, 즉 부파(Buffa)의 4막'과 같다"는 그의 말처럼 로시니는 송로버섯(미식)을 통해 유쾌한 음악, 달콤한 맛을 세상에 선물했습니다.




출처 : 아주캐피탈 웹진 Pioneer (11월호) /  천재의 식탁 (로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