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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연결하다/컬쳐&트렌드

마음의 쉼터, 동서양의 아름다운 정원

마음의 쉼터, 동서양의 아름다운 정원



우리는 대부분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몸과 마음은 본능적으로 자연에 이끌립니다. 그래서 내 집 베란다 혹은 옥상에 자기만의 정원이나 텃밭이라도 가꾸며 위안을 삼고는 하죠. 잘 가꾸어진 정원을 들여다보며, 정원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생명의 숨결을 느껴보도록 해요.




Natural & Artificial  





정원은 자연스러운 곳일까요, 인위적인 곳일까요? 필자가 정원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정원의 어원은 동서양 모두 ‘울타리가 쳐진 갇힌 공간’입니다. 어원적 의미만을 풀어 보자면 정원은 뜻밖에도 ‘자연을 향해 울타리를 친 인위적 공간’이라는 재해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과연 정원을 인간의 인위적인 공간(artificial space)이라는 의미로만 해석해야 할까요? 


제게 정원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고 싶지 않은 저울의 균형처럼 자연스러움과 인위적인 것의 균형 잡기입니다. 여름 정원의 한 켠에서 우리는 하얀 줄기에 늘씬하게 뻗어있는 자작나무 곁에 한들거리며 피어 있는 달리아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핀란드의 매서운 추위를 좋아하는 자작나무가 멕시코 자생의 달리아와 이웃을 맺은 셈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건널 수 없는 다리인 남반구와 북반구로 나눠진 이 지구의 식물들도 이제는 내 집 정원에서 한집안 식구가 되고 있습니다. 마치 다인종, 다문화 사회처럼 정원은 복잡하고 어색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어색함이 원래 그러하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아름답게 버무려져야 합니다. 인위적임이 자연스러움으로 빚어졌을 때 비로소 정원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됩니다. 그게 정원의 아름다움이고 이 사회의 진정한 빛남이 아닐까요?




Contemplation  





영국의 터너 교수는 우리가 정원을 만들고 있는 이유를 우리의 몸을 위해 'For the body', 특별한 활동을 위해 'For the activities', 우리의 정신을 위해 'For the spirit'라고 했습니다. 텃밭정원에서 우리는 몸을 위한 먹을거리를 얻고, 식물원 정원을 만들어 식물의 과학적 지식을 연구합니다. 그렇다면 정신을 위해 우리는 어떤 정원을 만들고 있을까요? 우리가 믿고 있는 종교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정원이라는 키워드가 보입니다. 


페르시아인이 만들었던 4분할의 정원, 그리스도교가 창조해낸 클로이스터 정원, 불교의 스님들이 일군 명상의 정원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신이 찾고 있는 정원의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종교인들에게 정원의 일굼은 신의 세계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열쇠였습니다. 독창적인 가든 디자이너의 세계를 열고 있는 일본의 스님 순묘 마수노는 ‘자신에게 가든 디자인은 부처 말씀의 재해석’이라고 했습니다. 종교인이 아니라 해도 우리는 종종 거친 마음을 내려놓고 나를 가라앉힐 그 무엇을 찾습니다. 정원은 끊임없이 우리의 손과 발을 움직이라고 말합니다. 정원은 내 손이 멈추는 순간 헝클어지고 탁해져 마음을 더 어지럽히는 요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원은 힘든 고역이지만 그래서 늘 들여다 보며 정리하고 가꾸어야 할 명상이기도 합니다.




Freedom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자신이 곧 국가’라는 말을 역사에 길이 남겼습니다. 태양왕이라 불렸던 그는 왕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권력은 왕에게로 집중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비단 정치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 유럽은 모든 것이 자로 잰 듯, 한 치의 벗어남이 없도록 틀에 가두어졌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숨이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정원의 식물들은 정원사의 가위질에 각을 잡고 어긋남 없이 자랐습니다. 바로 이 시절 사람들에게 가장 그리운 열망은 삐뚤어질 수 있는 ‘자유’였을지도 모릅니다. 달도 차면 기울듯 어긋남 없던 틀을 뚫고 삐뚤어짐의 반항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영국의 정원에서! 어긋남 없는 직선이 자연스러운 구불거림으로 풀렸고, 각 잡은 건물 대신 허물어진 유적이 등장하고, 식물은 스스로 자라고 싶은 모양대로 흐트러졌습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말이죠. 영국식 풍경 정원의 등장은 바로크 시대의 시각으로는 그 자체가 돌연변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상한 ‘자유로운 돌연변이’의 탄생을 유럽인들은 맹렬히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러움이 곧 자유임을 정원에서 찾은 셈이었습니다.




Art & Craft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빠름의 속도와 무한대의 복제를 선사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원하는 것을 빠르게, 한정판 없이 누구나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채플린의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에서처럼 이 빠른 무한대의 복사품 속에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어 가는지를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장인의 예술세계 'Art & Craft'로 돌아갈 순 없을까요? 정원은 느림보의 발걸음처럼 더디고 정성스럽게 가는 길입니다. 정원은 획일적인 대량생산을 거부하고 벽돌 한 장 한 장 장인의 손길에 의해 놓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노련한 대장장이의 망치로 다듬어진 철 대문으로 완성돼 갑니다. 정원은 지금의 새로움이 아니라 비와 바람이 머문 오랜 시간 속에 빛이 나고, 똑같음이 아니라 그곳이기에 가능한 단 하나의 유일함으로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세상에 단 한 점뿐인 화가의 그림처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것이 되는 정원! 내 손이 아니면 만들어지지 않을 풍경이기에 정원은 곧 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내가 만든 나의 정원인 것입니다.






출처 : 사외보 아주좋은날 2014.07+08월호 



BEHIND STORY 아름다운 정원에 담긴 인간의 이상향을 들여다 봅니다.



글 : 편집부